
이원기 변호사
(캘러포니아, 일리노이주, 워싱톤DC 등록)
조지아 대규모 단속이 남긴 경고장
미국 조지아주에서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둘러싼 대규모 이민 단속이 있었습니다. 현장에는 원청·합작사·하청·인력공급사가 얽혀 있고, 수백 명이 신원·취업자격 문제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단속의 실체와 법적 쟁점은 앞으로 더 다퉈지겠지만, 이번 사건이 남긴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투자는 면죄부가 아니며, 미국의 이민·노동·안전 규정은 기업 규모나 국적과 무관하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첫째, 간접고용도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하도급과 인력공급이 여러 겹입니다. 법은 “누가 급여를 주느냐”만 보지 않습니다. 누가 인력을 배치하고, 업무를 지시했는지, 현장에서 통제했는지가 중요합니다. 고용망 중 한 고리라도 규정을 어기면 전체 프로젝트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둘째, 절차는 공개돼 있고, 위반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미국의 고용자격 확인(I-9) 제도는 채용 시점의 문서 확인·기록·보관을 요구합니다. 만료일 재확인, 보관 기간, 양식 작성 방식까지 정해져 있습니다. 이민·노동·안전 규정은 공공 자료로 누구나 열람할 수 있고, 지키지 않았다는 흔적도 쉽게 드러납니다. “바빠서 못 했다”, “관행이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셋째, 안전과 임금, 이민은 따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공사·설치·시운전·가동이 겹치는 현장에서는 산업안전 규정이 엄격히 적용됩니다. 위험을 창출하거나 지배하거나 시정할 권한이 있는 주체는 모두 책임 후보군입니다. 원청이 “하청 일이라 몰랐다”고 빠져나가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임금·휴게·연장근로 규정도 주(州)별로 다르며, 공공 보조금이 얽히면 ‘현지 통상임금’ 같은 추가 요건이 붙을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
첫째, 출장(B-1) 비자의 함정. 본사 엔지니어가 출장 비자로 미국 현장에 들어와 설치·시운전을 ‘조언’하는 수준을 넘어서 직접 작업까지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 작업·생산·정비는 통상 취업 활동에 해당합니다. 비자 목적과 실제 업무가 어긋나면 단속 1순위가 됩니다.
둘째, I-9 서류 한 칸의 파급력. I-9는 채용일 기준으로 작성·확인하고, 정해진 기한 동안 보관해야 합니다. 하청·인력사가 섞이면 서류가 뒤엉키기 쉽습니다. 감사가 시작되면 벌금과 함께 작업 중단, 납기 지연, 계약상 벌칙, 평판 추락까지 domino처럼 번질 수 있습니다.
셋째, 다중/공동 고용주의 동시 책임. 현장에서 안전 미비가 발생하면, 실제로 현장을 지휘·관리한 흔적(이메일 승인, 일정 통제, 안전지침 배포 등)이 책임 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계약서에 안전 의무를 흐릿하게 두거나, 현장 실무와 문서가 불일치하면 불리해집니다.
기업이 ‘지금’ 당장 해야 할 10가지
첫째, I-9 전수 점검(내부감사). 모든 근로자의 I-9를 채용일 기준으로 재검토하세요. 허용 가능한 신분증·취업서류인지, 만료일 표기가 정확한지, 필요 시 재확인을 했는지, 보관기한은 지켰는지 확인합니다. 가능하면 법무팀·외부 변호사 주도로 진행해 법률자문 특권을 확보하세요.
둘째, E-Verify·주(州)별 규정 정비. 일부 주·공공 조달 프로젝트는 E-Verify를 요구합니다. 어느 현장에서 누구에게 적용할지 내부 정책을 명확히 하고 교육·기록 체계를 만드세요.
셋째, 하청·인력공급사 실사(Due Diligence). 계약 전 상대방의 I-9/E-Verify 정책, 비자 스폰서 이력, 과거 정부 조사·벌금 사례를 확인합니다. 계약서에는 준법 진술·보증, 자료제공·감사권, 위반 시 즉시 해지·손해배상, 하위 하청까지 동일 의무 전가(flow-down) 조항을 넣으세요.
넷째, 비자 및 업무 정합성 재점검. E-2(투자자), L-1(주재원), H-1B/H-2B(전문·단기), J-1(연수) 등 실제 업무에 맞는 비자를 선택합니다. B-1 출장자에게 생산·설치·정비를 시키는 관행은 중단하세요.
다섯째, 임금·노동 준수 체계. 연방(최저임금·연장근로)과 주별(임금명세서, 식사·휴게) 규정을 동시에 반영합니다. 공공자금·보조금이 연계된 공사는 ‘현지 통상임금’ 등 별도 요건을 사전에 검토하세요.
여섯째, 산업안전(현장) 거버넌스 설계. 원청 접근증 발급 요건(I-9·안전교육 이수 증빙), 현장 안전교육·점검·시정 권한의 배분과 절차를 문서화하세요. 사고가 나면 “누가 권한을 갖고 있었는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일곱째, 현장 단속(워크사이트) 대응 매뉴얼. 영장 확인 절차, 인터뷰 동행자 지정, 자료 보존 지시, 언론·영사관 연락 창구, 현장 통제선 설정 등 플레이북을 만들고 모의훈련을 하세요. 즉흥 대응은 더 큰 리스크를 부릅니다.
여덟째, 내부제보·반보복 체계. 다국어 익명 신고채널을 운영하고, 신고자 보호·반보복 금지 정책을 교육하세요. 문제가 외부로 번지기 전에 조기 포착–자체 시정이 최선입니다.
아홉째, 데이터룸(증빙 창고) 구축
I-9, E-Verify 기록, 급여·스케줄, 안전교육, 하청 계약·검수 자료를 표준 폴더 구조로 관리합니다. 접근권한과 변경이력(감사추적)을 남겨야 감사·조사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열째, 리더십 브리핑·책임 매트릭스. 경영진·현장소장·HR·구매·안전·법무가 각자의 역할과 의사결정 권한을 공유하도록 책임 매트릭스를 만드세요. 단속·사고 시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지 명확해야 혼선을 줄입니다.
“예방”이 유일하게 비용이 덜 든다.
단속은 단순히 벌금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장 중단, 공급망 차질, 납기 지연, 고객사 클레임, 금융·보험 약정 위반, 지역사회·정치적 파장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는 지역 경제와도 얽혀 있어, 한 번의 이슈가 외교·정치 이슈로 비화하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 모든 비용을 합치면, 평소에 기초 규정을 정확히 지키는 비용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번 일을 ‘남의 일’로 넘기면, 다음 차례는 우리의 현장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공장을 짓고 사람을 쓰는 한국 기업이라면, 오늘부터 준법의 사슬을 원청에서 하청까지 단단히 묶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투자가 보호되고, 일자리가 지켜집니다.